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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생활사 62

전쟁이 여성에게 남긴 것

지난 유퀴즈 250회 방송에서 미국 국방부 법의인류학 진주현 박사가 출연하여, 전쟁 실종자들의 유해발굴작업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었다. 그 분의 전공과 이러한 일을 하게 된 배경도 보면서, 감동과 극적인 이끌림의 신비감 마저 들정도 였다.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6.25 전쟁 참전 용사다. 그리고 전장에서 부상을 당했고, 한쪽 눈 옆에 상처를 크게 입으셨는데, 그래서 늘 안경을 쓰고 다니셨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께서 눈이 안좋으신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성장 후에 전쟁시 부상이야기를 듣고, 그 흉터를 가리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의용사로 국가유공자가 되셨지만, 우리 형제들에게는 국가유공자로서의 혜택을 모두 거부하도록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국가유공자라는..

k-생활사 2024.06.28

한국 근대 여성의 삶과 위치는 어떠했는가?

돌이켜 한국 여성의 삶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지금 여성의 지위와 역할, 삶에 대한 문제에 앞서 살펴보아야 하는 것으로, 그 한계와 문제를 인식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 한국에서 1920년대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여성해방론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평등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식민지 현실에서 여성의 경제적 평등과 독립은 더욱 요원한 것처럼 보였다. 식민지하에서 근대로의 진입과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들에게 그 정체성을 독립적으로 꽃피우기보다는 정치세력과의 연대 속에서 이를 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제공했다.   광복이후 미군의 점령은 여성들이 향후 국가 건설과정에 한몫함으로써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신장하는 데 주력할 수 있다는 전망을..

k-생활사 2024.06.26

비빈과 궁녀의 일과는 어떠했을까요?

궁궐의 생활은 궁금합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물론 사적 자료나 영화 사극을 통해서 감지하지만, 한번 더 알아보기로 합니다. 비빈의 일과 왕비나 세자빈으로 대표되는 궁중의 귀인들은 비교적 한가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새벽 문안에서부터 시작되는 효(孝)와 돈목(敦睦)의 실천이 일상이었다. 문안은 해가 뜨기 전인 식전에 하는 것이므로 어린 비빈들은 그 전날 밤에 잠을 마음 놓고 못잤다는 고백이 있다. 문안 이외에 왕보다도 더 간병 시선 탕약시중과 같은 효의 실천이 요구되었다.  그런 일과 이외에 궁중에는 관혼상제를 비롯한 종친 외척의 반가에서 들어오는 손님접대, 벼슬아치 부인들의 초대 등으로 일 년 내내 조용한 날이 없다. 왕족들의  5개월 장례에서 부터 3개월..

k-생활사 2024.06.12

관상에서의 인간관

세상이 바뀌고 AI가 대세가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우리는 생긴 모습과 관상, 사주 등에 관심을 갖는다. 왜 일까? 미래는 자기자신은 어찌보면 잘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므로 이를 알면, 좀더 수월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관상의 기본원리를 찾아보니, 남기고 싶은 글들이 있어 기록해 봅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사람은 소우주이다 [수경집] 두상총론에 보면 '머리는 육양의 우두머리요, 모든 뼈의 주인이다. 음양의 기를 받고 천지의 형태를 닮았다. 오행의 자질을 받아 만물의 초고 신령스런 것으로 삼는다. 머리는 하늘의 상이고 발은 땅의 상징이다. 눈은 해와 달의 상이고 음성은 우레의 상이다. 혈맥은 강하의 상이고 골격은 금석의 상이다. 코와 이마는 산악의 상이다. 수염과..

k-생활사 2024.06.11

궁궐의 역사 빛과 그림자(고구려~고려)

왕조시대의 궁궐은 깊고 깊은 지존의 내밀한 처소며, 나라의 일과 사건이 점철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이 땅에 살던 백성들에게 임금이 살고 있는 대궐은 존엄과 숭앙의 대상이었으며, 대궐을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청와대의 개방 이후, 그간 대통령이 기거하며 정사를 돌보던 상징성을 누구나 방문해서 살펴볼 수 있다는데에 의미를 두고, 많은 관람객으로 붐빈다. 제자가 문화재청에 근무하면서 청와대탐방 업무를 보고 있어, 학생들과 견학을 다녀온 경험이 엊그제 일 같다.  그러면 우리 역사에서 궁궐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어떤 빛과 그림자를 갖고 있었을까?   궁궐은 당대 최고의 석공 목공들이 지었으며, 숱한 전과 각과 문은 치밀하게 계획된 공간그성으로 이루어졌다. 나무 하나 돌계단 하나에도..

k-생활사 2024.06.04

닭백숙의 유래와 건강기능성

닭은 예로부터 서민음식으로 건강보양에 사용되었다. 한국인들의 '치킨사랑'은 K-food의 대표주자로 치맥을 손꼽게까지 했으니, 닭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이 없다. 그러나 튀김닭이 인기를 끌기전부터 한국인들의 닭사랑은 백숙으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닭을 튀겨먹는 것이 아니라 고아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른바 닭백숙... 여름이면 항상 보양음식으로 닭백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치맥은 치맥이고, 닭백숙은 닭백숙인 것이다. 구워먹는 한우는 구이고, 불고기는 불고기인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이러한 닭백숙은 어떤 유래를 갖고 있을까?   삼계탕, 닭백숙 등 보양음식으로 일컬어졌던 기본 재료인 닭!  혹 영계백숙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연계백숙이 맞는 표현이다. 어린닭(연계)은 살이 연한 약병아리다. 맛이 달고 성..

k-생활사 2024.06.02

왕의 하루 일과를 살펴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하루하루 일과로 바쁘다. 아침점심저녁 공적인 일과와 사적인 일과로 분주하게 보낸다. 그러면서 너무 바쁘고 힘들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고 살아간다. 꼭 자신만 힘든 일과를 보내는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러면, 과거에 왕실의 하루 일과는 어떠했을까? 과거든 현재든 나라를 대표하는 왕과 대통령의 자리는 쉽지 않은 위치다. 왕의 하루 일과를 알아보면서 오늘날 우리의 하루하루 삶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조선시대 왕의 생활은 공사(公私)의 두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처리하는 군국기무는 만 가지나 되기 때문에 왕의 집무를 '만기(萬機)'라 부른다. 왕은 만민의 위에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인이므로 그 생활은 상상하는 것 같이 사치하고 편하고 재미있는..

k-생활사 2024.06.01

태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태항아리, 태실은 무엇일까?

요즈음 아기가 태어나면 태는 아기의 도장을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출산을 하면서 어떻게 태를 처리 했을까?일반 민가와 왕실에서의 태 처리가 달랐다.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잘라서 분리시킨다. 이것을 '삼가른다'라고 한다. 태줄을 배꼽에서 한 뼘쯤 되는 부분을 자르고, 그 끝부분을 실로 잡아매어 깨끗한 솜에 싸서 아기 배 위에 올려 놓는다.  태는 흔히 가위로 자르지만, 딸을 낳았을 때는 남자 동생을 바라는 뜻으로 소독한 낫이나 식칼을 사용했다. 아들인 경우 낫이나 식칼 이외에 산모가 이로 끝ㅎ고, 그 침을 삼키는데, 이렇게 하면 아기가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요즈음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잘라낸 태는 보통 사흘이 지나기 전이나 사흘째 되는 날 처리하며, 그 방법은 곳에 따라..

k-생활사 2024.06.01

산바라지는 어떻게 했었나?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예약한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채비를 차린다. 우린 언제부터 산후조리원을 이용해 왔던가? 과거에 어머니들은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가정에서 할머니들이 아기를 받아주었고, 세월지나면서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기도 했고, 이제는 산부인과에서 출산하고 몸조리까지 모두 산후조리원에서 마치고 홀가분한 몸으로 출산후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연상하고, 또 그렇게 한다.  들째아이 출산 때가 생각난다. 시누이와 2개월차이로 아이를 낳았고, 시부모와 함께 살았던 나는 시누이의 산바라지를 하는 시어머니께 나의 아이를 보아달라고 하기 어려웠다. 친정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산바라지 해 주시는 건 불가능했고, 친정으로 가서 지내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때만해도 산후조리원이 없던 시기라, 나는 병원에서 출산하..

k-생활사 2024.05.30

서수, 예쁜 글씨가 필요한가요?

글씨를 예쁘게 쓸수 있는 것도 큰 재주다. 요즈음 컴퓨터로 글을 쓰다보니, 자필의 매력을 찾기가 힘들다. 굳이 글씨를 예쁘게 써야할 필요도 못느끼는 경우도 많다. 의외로 너무 악필이라, 손글씨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는 글씨를 잘 쓰는 명필가가 더 대우 받았던 시기다. 문장가는 물론이고, 명필가를 말함이다.  조선시대에는 글씨를 대신 써 주는 전문가가 있었다. 이들을 서수(書手)라 불렀다.  서수에 관한 언급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하는데, 안정복의 [동사강목]에는 고려시대 문하부 소속에 서수의 직임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고, 정약용의 [목민심서] 이전 6조에는 고려 시대 관직 중에 서인(庶人)이 주로 담당하는 분야 중 하나로 언급했다. 애초에 서수는 관에 속하는 낮은 벼슬에서 출발했다.  [영조..

k-생활사 202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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