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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생활사 62

쑥의 효능

요즈음 봄철을 맞아 쑥을 캐고 있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쑥을 활용한 각종 식품은 물론 화장품까지도 다양하게 만나고 있지요. 쑥은 어떤 효능을 갖고 있을까요? 문헌에 근거한 쑥의 효능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의아하게 보이는 점도 있지만, 과거에 선조들의 삶속에서 응용되었던 쑥의 효능과 가치를 새삼 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쑥, 어떤 효험을 기대했었는지 살펴봅니다. 모든 벙을 다스리는 쑥 [명의별록]에서는 "쑥은 쓴맛이 있으며, 미온하고 무독하다. 쑥으로 뜸을 떠 모든 병을 다스린다. 달여 먹을 수도 있으며, 토혈과 설사와 이질을 그치게 하고, 음부의 기생충과 부스럼을 치료하고, 부인의 누혈(비정상적인 자궁출혈)을 그치게 한다. 음기(陰氣)를 이롭게 하며, 피..

k-생활사 2024.03.22

우리 가양주의 전통에 포도주가 있었다.

우리는 포도주를 수입된 서구문화의 산물로만 알아 왔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통 가양주의 기록을 보면, 포도로 만드는 과일주인 서양의 와인과는 제조법이 다소 다르지만 곡물을 주재료로 한 포도주 제조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운잡방]에는 121가지의 조리법이 나오는데 그증 59가지가 술제조에 관한 항목입니다. [수운잡방] 은 조선시대 1552년 이전에 김유(1481-1552)와 그의 손자 김령(1577-1641)이 저술한 전통 조리서입니다. 2021년 8월 24일에 기록유산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1670년경에 안동장씨 장계향의 [음식디미방]보다 100년이상 앞선 글입니다. 중국조리서를 인용한 부분도 있으나, 안동 근처에서 주로 만들던 음식조리법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은 수시로 금주령을 ..

k-생활사 2024.03.21

Q. 두부김치 : 두부와 김치 중 더 중요한 것은?

얼마전 퀴즈에서 두부김치에서 두부 : 김치 어떤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저는 '두부'라고 외쳤으나, 많은 사람들이 '김치'라고 해서 퀴즈에서 지고 말았네요. 두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만,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김치사랑도 하지만, 두부사랑이 남달라서 그런가 봅니다. 두부 역시 매일 식탁에서 빠진적이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에 두부가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수가 없다고 하는데, 문헌에 근거해서 그 시기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목은집』 중의 〈대사구두부래향 大舍求豆腐來餉〉이라는 시에 ‘두부’의 명칭이 처음 나온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려 말에 가장 교류가 빈번하였던 원나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에는 두부제조법이 더욱 발달하였다. 『세종실록』에는 명..

k-생활사 2024.03.19

떡볶이의 추억

나이와 관계없이 학교다니면서 떡볶이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을거예요.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어 주셨던 궁중떡볶이가 다인줄 알았는데, 학교다니면서 먹었던 새로운 맛인 신당동떡볶이가 유명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가끔 궁중떡볶이를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학교근처 떡볶이 집을 지나칠 때면, 참새방앗간처럼 기웃되는 것은 여전합니다. 며칠 전에는 집근처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떡볶이집을 초중고가 있는 곳을 지나면서 보게 되어, 얼른 떡볶이와 어묵, 순대를 사들고와서 맛나게 먹었답니다. 학교시절을 떠올리면서 말이죠. 탕후루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떡볶이집이 일부 자리를 내어 놓긴했어도, 여전히 사랑받는 떡볶이. 그런데 떡볶이가 한식이라고 해야할지? K-Food라 해야할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네요. 근대화이후에 새..

k-생활사 2024.03.16

한국인의 일생

한세월 살다가는 인생, 한국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설전시를 통해서 출생과 죽음까지, 그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세대의 삶마저도 세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은 죽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현재 살아 숨쉬는 곳이지요. 《한국인의 일생》 전시관에서는 조선시대1392~1910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주요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출생 조선시대에는 유교 이념에 의해 아들 중심의 가계家系 계승이 가장 중요했기에, 출산 전부터 남자아이를 기원하였다. 출산 후에는 백일잔치, 돌잔치를 열어 아이가 무사히 성장한 것을 축하하였다. 남자는 20세에 관례冠禮를..

k-생활사 2024.03.15

'한복생활'이 '국가무형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한복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옷이라는 정도로 이해하거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한복 한벌 없는 사람이 더 많은 한국인의 생활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눈에는 익숙하지요. 아기돌에 돌복을 입히고, 유치원에서 예절의 날에 한복을 입고, 명절이나 행사가 있을때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쉽게 한복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한복'을 다시 생각하고 착용해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옷으로 말이죠. 우리 옷이 세계화에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데 에 기여한 의미 있는 활동이 있었지요. 지난 2022년에 '한복'이 드디어 국가무형문화유산이 된 것입니다. 국가무형문화유산이 된 한복생활 2022년 7월 20일 [무형문화재 보건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및 동 시행령 제14..

k-생활사 2024.03.15

계란말이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듯

계란말이는 집에서도 해먹지만, 술안주로도 인기를 얻는 음식이고, 한국인이 즐겨먹는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계란말이라도 다 똑같은 것은 아님을, 일본의 계란말이를 맛보고, 우리나라의 계란말이와는 정말 달랐던 그 옛날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계란말이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기록에 근거해서 알아볼 수 밖에 없어서, 한식진흥원의 자료룔 통해서 살펴본다. 조선후기 조리서인 『주찬』의 계란병에 소개된 음식 중 계란말이와 비슷한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얇게 부친다. 어육,초피,생강을 섞고 적당히 간을 맞추어서 만두소처럼하여 더울때 싸서 가장자리를 여미고 생강과 파를 섞은 초장에 찍어먹는다.” 1800년대 말 조리서인 『음식방문』에도 계란말이와 유사한 계란 느르미라는 음식이 나온다. “..

k-생활사 2024.03.14

최부잣집의 남다른 스페이스로지

어떤 사람이든 잘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대대로 그 富를 유지하고 물려주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대대로 진정한 부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게다. 우리는 400년을 이어온 최 부잣집의 남다른 스페이스로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경주 최부자'의 종가댁 경주 최부잣집은 무려 12대, 500년 동안 富를 이어왔으니, 정말 대단하다. 최부자 가문은 1대 최진립 장군부터 12대 독립운동가 최준 선생까지 지조와 절개, 겸손과 포용의 미덕으로 이름값을 귀하게 만들었다. 그집의 부를 말할 때, 지리적인 혜택이나 경영능력이 아니라 '육훈'이라 불리는 가훈에 대해 먼저 말한다. 사방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진사 이상의 벼슬은 ..

k-생활사 2024.03.08

밴댕이 소갈머리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할머니와의 대화 중에 어떤 사람에 대해서 '밴댕이 소갈머리 같으니라구' 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무슨소리인가? 했었다. 그후 뜻을 알게되었는데, 그것은 속좁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바로 밴댕이의 특성을 풍자해서 말한 것이라 한다. 밴댕이 소갈머리 그물에 잡히는 순간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밴댕이의 특성에 빗대 편협하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속담 그러나 밴댕이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편협한 성품보다는 가장 맛있는 생선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이 어머니를 걱정하며 보낸 선물로 밴댕이젓이 있었다. 1595년 5월 21일 난중일기에 따르면 전장에서 어머니의 집에 큰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순신은 어머니의 안부를 걱정하면서 전복과 어란 몇점, 밴댕이젓..

k-생활사 2024.03.06

집주름

부동산공인중개사 시험은 2024년 올해 35회로 진행됩니다. 시험은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국가자격시험으로 부동산 중개업을 건전하게 지도, 육성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부동산 거래질서를 확립하여 국민경제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시행합니다. 시험은 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렇듯이 전문 국가자격으로 어렵게 자격을 취득해야만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답니다. 집주름[가쾌(家儈), 사쾌(舍儈)]은 조선시대의 부동산 중개업자 18세기 중반으로 자리 잡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753년 [영조실록]기사에는 부마도위(왕의 사위)의 후손 윤성동이 집주름으로 전락한 사실이 소개되었는데, 그를 무뢰배라고 할 정도로..

k-생활사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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