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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잣집의 남다른 스페이스로지

바짝이 2024. 3. 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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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든 잘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대대로 그 富를 유지하고 물려주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대대로 진정한 부자가 되는 것은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게다.

 

우리는 400년을 이어온

최 부잣집의 남다른 스페이스로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경주 최부자'의 종가댁



경주 최부잣집은 무려 12대, 500년 동안 富를 이어왔으니, 

정말 대단하다. 

최부자 가문은 1대 최진립 장군부터 12대 독립운동가 최준 선생까지

지조와 절개, 겸손과 포용의 미덕으로 이름값을 귀하게 만들었다. 

 

그집의 부를 말할 때, 지리적인 혜택이나 경영능력이 아니라

'육훈'이라 불리는 가훈에 대해 

먼저 말한다. 

 

사방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만석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
권력에 탐닉을 막기 위해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그러나 富의 세습은 이러한 가훈만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집'을 통해서 그 해답을 풀어간 신기율(2016)의 글을 참고하고, 

몇가지 생각을 함께 실어본다. 

 

 

최씨 고택은 화려하지 않고 사치스럽지 않다. 

가장 좋은 목재로 지어진 한옥의 고급스러움은 있었지만

그 큰 공간을 채워온 방식은

소박하고 검소했다. 

 

 

 

그 집이 아담해 보이는 것은 주위 향교와의 갈등을 피해

터의 위치와 용마루를 낮췄기 때문이다. 

 

 

 

일반 대감댁과 다르게 솟을 대문을 작게 만든

겸양의 미가 눈에 보인다. 

 

문은 그 나름의 상징성을 갖고 있다. 

안과 밖의 구분이 되며,

그렇게 구분해서 이루어진 공간을

소유한 사람의 고유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준다.

 

문은 그 집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는 집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런 문을 낮고 작게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선언이었다.

낮아진 문턱으로 하루에만 100명이 넘는 과객과

유랑객이 넘나들었다.

 

이중에는 지위가 높고 식견이 풍부한 선비도 있었지만

신분이 낮고 굶주린 이들도 있었다. 

 


 

행운이나 재앙이 들어오는 것도 대문을 통해서 였다. 

과거에 동쪽에 대문을 두도록 했던 것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에서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부엌을 비추도록 배치했던 점, 

또한 솥을 걸어둘 때도 밥을 푸는 방향이 문으로 나가지 않도록 했던 점들

그러한 것은 모두 복을 불러들이기 위함의 의미를 갖는다.  

 


 

본채 옆에 있는 곳간

 

 

모든 손님을 차별하지 않고 극진하게 대접했고,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전국으로 퍼졌다.

이 집의 곳간을 가장 크고 눈에 띄게 만들었다는 점도

특별하다.

흉년이나 혹한이 오면 최부잣집의 곳간은 먼저 열렸다.

 

그런 개방성은 시간이 갈수록 최씨 집안을 명문가로 만들어 주었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명분이 되었다. 

 

그 집에 머물다가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후원과  지지자가 되었다.

 

부자들에게는 시대와 공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공간을 다루는

자신만의 특별한 감각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터가 아니고,
부자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만드는가, 
그들만의 스페이스로지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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