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사는 웰빙넷

k-생활사

서수, 예쁜 글씨가 필요한가요?

바짝이 2024. 5. 28. 10:13
728x90
반응형

글씨를 예쁘게 쓸수 있는 것도 큰 재주다. 요즈음 컴퓨터로 글을 쓰다보니, 자필의 매력을 찾기가 힘들다. 굳이 글씨를 예쁘게 써야할 필요도 못느끼는 경우도 많다. 의외로 너무 악필이라, 손글씨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는 글씨를 잘 쓰는 명필가가 더 대우 받았던 시기다. 문장가는 물론이고, 명필가를 말함이다. 

 

조선시대에는 글씨를 대신 써 주는 전문가가 있었다. 이들을 서수(書手)라 불렀다. 

 

서수에 관한 언급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하는데, 안정복의 [동사강목]에는 고려시대 문하부 소속에 서수의 직임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고, 정약용의 [목민심서] 이전 6조에는 고려 시대 관직 중에 서인(庶人)이 주로 담당하는 분야 중 하나로 언급했다. 애초에 서수는 관에 속하는 낮은 벼슬에서 출발했다. 

 

[영조실록]에 이제동 이라는 인물이 신씨 집안에서 10년 넘게 서수 노릇을 했다는 내용이 있고, 심노숭의 [자저실기]에도 정현좌가 심노숭 형제의 모든 과거 시험 답안지와 원고를 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후반을 전후해서 서수들은 유려한 글씨를 무기로 민간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을 형성해 갔다. 

 

시대가 흐르면서 생겨나는 직업도 있고, 소멸되는 직업도 있다. 컴퓨터로 모든것이 진행되는 요즈음에는 상상하기 힘든 직업이나 이 당시에 서수는 그나마 인기있는 직업이었던 모양이다. 

 

서수가 필사한 자료는 무엇이었을까?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실린 [병오기행]에는 서수가 없어서 조선의 시를 빨리 필사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서수가 필사하는 자료에 문학 작품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에 한양의 세책가에서 취급한 한글 소설 역시 전문 필사자들에 의해 필사되었다고 전해진다.

 

서수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곳은 과거 시험 현장이었다. 조선 후기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좋은 자리를 잡아 주는 선접군, 답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거벽, 작성된 답지를 깔끔하게 필사해 주는 서수와 한 팀을 이뤄 시험을 치렀다. 이익이 과거 시험 답안지를 스스로 작성하는 사람이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고 비판한 점으로 보면 이러한 분위기는 당시에 매우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답안지를 좋은 글씨로 가능한 한 빨리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이 합격에 유리했으므로 서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동패락송]에 실린 '수원 이동지'는 과거 시험 대작자 거벽과 대필자 서수를 동행하여 과거에 합격한 이야기다. 이외에도 18세기 야담집 [기문습유]에 한 선비가 등장하는데 이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는 과정에서도 거벽과 함께 서수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실태는 과거 시험 부정으로 이어지고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으므로, 정조는 거벽과 서수의 과거 시험장 출입을 금지했으나 근절하지는 못했다. 

 

이외에도 관에 제출하는 공문서 작성과 필사도 서수가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글쓰기가 불가능한 사람들의 문서를 대신 써 주기도 했지만 훌륭한 글씨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수수료를 받고 필사해 주는 일도 했다. 

 

[목민심서]에는 호적 작성을 둘러싼 비용과 이를 이용한 비리가 잘 정리되어 있다. 호적 대장을 등서할 때 쓰이는 비용은 정서조 한말(약 한 냥)로, 여기에는 문서 내용을 필사해 주는 서수의 품삯이 포함되었다. 정약용이 직접 목격한 사례도 기록했는데, 호적 대장 한 장 등서 비용이 서푼 정도였으며 수정하여 다시 쓸 경우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했다. 

 

사대부가의 각종 기록물이나 문학작품, 소비상품으로 등장한 고전 소설, 과거시험의 답안지, 각종 공문서 작성 등 필사와 작성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글씨 잘쓰는 능력은 직업으로 연결되었다.

[조선잡사]참고


 

보고할 때 필요한 차트를 만드는 차트 글씨 잘 쓰는 사람도 인기가 있었다. 행정관서나 군대에서도 차트를 보면서 보고했던 행태들이 우리의 근대 및 현대사 속에서도 있었음을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한동안은 '대서소'라는 곳도 있었다. 글씨를 대신 써주는 곳으로 관공서에 필요한 문서작성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출처:오마이뉴스/ 대서소

 

그리고 '예쁜 글씨대회'  '예쁜 엽서대회' 등도 레트로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되었지만, 손글씨를 쓰는 것은 발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유의미하다. 어린아이들이 필기구 사용을 익히는 것,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도 펜을 잡고 글을 쓰는 행위는 두뇌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으니, 무조건 예쁜 글씨를 쓰는 것만이 아니라, 그 행위가 갖는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요즈음 다시 필사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성경이나 고전을 필사하기도 하고, 그와 관련한 필사노트도 판매된다. 필사책도 판매된다. 취미로 또는 마음의 건강을 위해 힐링타임에 필사를 한다.

 

출처 : 주간조선/ 필사책 열품

 

 

컴퓨터의 등장과 식상한 글씨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은 다양한 글씨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예쁜 글씨를 좀더 예술적으로 표현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시대가 바뀌고 글을 쓰는 매체들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동일한가 보다. 

 

 

 

출처 : 11번가 예쁜엽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