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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바라지는 어떻게 했었나?

바짝이 2024. 5. 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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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예약한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채비를 차린다. 우린 언제부터 산후조리원을 이용해 왔던가? 과거에 어머니들은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가정에서 할머니들이 아기를 받아주었고, 세월지나면서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기도 했고, 이제는 산부인과에서 출산하고 몸조리까지 모두 산후조리원에서 마치고 홀가분한 몸으로 출산후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연상하고, 또 그렇게 한다. 

 

들째아이 출산 때가 생각난다. 시누이와 2개월차이로 아이를 낳았고, 시부모와 함께 살았던 나는 시누이의 산바라지를 하는 시어머니께 나의 아이를 보아달라고 하기 어려웠다. 친정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산바라지 해 주시는 건 불가능했고, 친정으로 가서 지내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때만해도 산후조리원이 없던 시기라, 나는 병원에서 출산하고 퇴원 후에는 집으로 왔고, 산후돌보미를 오도록 하여 한달간 몸조리를 했었다. 산바라지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머니들은 손주를 보는 기쁨과 즐거움에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돌보셨었다. 이제 둘째아이와 시어머니가 산바라지를 했던 조카 모두 장성해서 멋진 젊은이가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산바라지를 하셨던 외손주에 대한 애정은 성장할때까지도 남다르셨다. 돌봄의 마력이랄까?  그들은 돌봄의 손길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세월은 지났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출산과 돌봄의 역사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어떻게 산바라지가 이루어졌을까? 

 

과거에는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출산할 수 있도록 친정이나 시집 중 하나를 출산처로 정했다. 그리고 출산처가 정해지면 방을 치장하는 한편, 포대기 기저귀 배내옷 솜 등을 준비한다. 아기의 살에 직접 닿는 물품들은 습기를 잘 빨아들이고 부드러운 면직물로 한다. 흔히 첫 아기의 포대기는 친정에서 해준다. 아기 물품을 살때는 값을 깍지 않았다. 값을 깎으면 아기의 복을 깍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배내옷은 바늘로 꿰매며 단추를 달지 않고 긴 끈을 붙여 가슴에 한바퀴 돌려 맨다. 단추 대신 긴 끈을 쓰는 것은 아기의 수명이 그 만큼 길기를 바라서다. 많은 좁쌀처럼 오래 살라는 의미에서 좁쌀을 속으로 한 배게를 만들어 주었다. 

좁쌀베개는 땀을 많이 흘리는 아기의 땀을 잘 습수해주고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과거에는 오래 살라는 의미부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배내옷 준비는 일찍부터 하지 않았다. 그것은 혹시라도 아기가 잘못될지 몰라서 조심했던 의미다. 태동을 느낀후에야 배냇저고리를 준비했다고하니, 그럴만하다. 영아사망율이 높았던 시기였으므로, 태아때부터 조심하려는 마음이 담긴 것이라 하겠다. 

 

 

해산일이 정해지면 산바라지도 정해둔다. 산바라지는 주로 친정이나 시집의 어머니가 맡았지만, 해산 경험이 많고 아이들을 모두 무사히 키운 복 많은 노인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복 많은 할머니는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해산을 도왔다. 해산을 도운 댓가로는 속옷이나 버선을 주는데, 옷을 해주는 것은 노인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아들은 낳은 집은 형편에 따라서 별도의 후한 사례를 했다. 

 

아기를 낳기 전에 산실의 윗목에는 삼신상을 마련한다. 삼신상은 깨끗한 짚을 깔고 그 위에 쌀 물 미역 등을 놓은 것인데, 지역에 따라 소반에 올려 놓고 순산을 빌기도 한다. 삼신은 한 집에 한 분 뿐이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산달이 같으면 며느리는 반드시 친정에 가서 아이를 낳는다, 과거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출산이 겹치기도 했으니, 오늘날과는 매우 다르다. 

 

출산 시 짚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출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떤 지방에서는 짚을 까는 대신에 짚 한 단을 산실에 세워둔다. 짚을 깔고 아기를 낳는 이유는 출싼 때 나오는 피를 처리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짚자리를 낳았다'는 소리를 하려고 깔았다고 한다. 짚에서 벼가 무르익는 것과 아이의 출생을 결실이라는 차원에서 같게 보아 알찬 아이의 탄생을 바라는 마음에서 온 습속이다. 이처럼 짚은 곡령(corn sprit) 신앙의 일종으로 안산(安産)을 돕는 조산신(助産神)의 상징이다. 

 

삼신상에 올려진 물 미역 쌀은 출한후에 첫국밥을 끓여서 삼신상에 올렸다가 산모가 먹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산모에게 달걀이나 메밀수제비를 먹인다. 닭은 알을 잘 낳기 때문이며, 메밀 수제비처럼 미끄러워서 순산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삼신상

 

 

 

그러면 남편은 무엇을 했나? 

남편은 아내의 산달이 다가오면 삼으로 왼새끼를 꼬아둔다. 산실에 밧줄처럼 매어 놓으면 임산부가 이를 잡고 힘을 쓴다. 이 줄을 '삼신끈'이라고 한다. 황소 오줌에 적셔두면 주력(呪力)이 생긴다고 믿었다. 조선조의 왕실이나 상류층에서는 문고리에 걸어둔 은제 말급쇠를 잡고 힘을 썼다. 그리고 아이의 돌에 이르러 이 말굽쇠를 녹여 말굽 모양의 노리개를 만들어 채워준다. 아이를 낳을 때 잡았던 삼신끈은 아이를 못 낳았거나 아들을 바라는 여성에게 인기가 높아서 비싼 값에 팔리기도 했다. 

 

출산 때에는 집안에 잠겨 있는 모든 문을 열어두는데 이는 아이가 산모의 하문(下門)을 잘 열고 나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대문과 장롱문을 열고, 때로는 지붕의 기와를 떼어 놓는 것도 열쇠의 개봉(開封)을 상징한다. 이는 동물에도 적용되어 돼지나 소가 난산일 때 대문을 열어둔다. 

 

난산일 때에는 삼신끈 대신 남편의 상투를 잡고 힘을 쓰는 습속도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를 쉽게 낳고, 분만을 방해하는 잡귀가 남편쪽으로 옮겨져 산모와 아이가 안전을 누리게 된다고 했다. 남편이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깨닫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하니, 하나의 행위와 물건 등에도 의미를 부여했던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난산이 계속될 때는 여러가지 주술을 베푸는데, 남편의 아래 속 옷이나 띠를 부인의 배에 감아주기도하고, 아이를 많이 낳은 부인의 치마 덮어주기, 털어낸 참깨대 붂음을 방 네 구석에 세우기, 우물에 가서 동이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쏟아버리기, 대문 빗장에 톱질하여 그 가루를 먹이기, 불 지핀 아궁이에 부채질을 해서 연기를 빨리 빼기, 쥐구멍터주기 등이 있다. 

 

모든 행위들이 어이없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난산으로 힘든 산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좋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보고, 그 의미를 찾으려 했던 선인들이 한 생명이라도 귀하게 얻고자 하는 열망이 만들어낸 행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사회의 일원으로 제 몫을 다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사랑의 결과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생명체 보다도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보듬는 자세가 더욱 절실해 지고 있는 오늘에 과거의 산바라지를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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