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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육아일기

바짝이 2024. 2. 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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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해도 할아버지의 손주사랑은 변함 없는 듯 하다. 요즈음 할아버지들이 쓰시는 육아일기, 에피소드 등은 노년의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보석같은 경험이다. 퇴직과 정년 후 손주돌봄에 올인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보통 50대후반에서 60대정도로 보인다. 인생의 경험과 연륜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고 베품을 몸에 담은 분들은 이제 더 없는 사랑의 향연을 손주에 펼치신다. 젊은이들은 육아에 도움을 주시니 '감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주육아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고 기쁘고, 더없이 사랑스런 자손을 보는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니 '감사'하다. 세대간에 이렇듯 감사와 존경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손주들은 세상에 더 없는 복덩이 들이다. 

 

그러나 결혼도 육아도 뒤로 밀거나, 아예 선택하지 않는 이들이 많으니, 인생에서의 행복과 감사의 순간을 많이 놓치는 거 같아 마음이 짠해 진다. 

 

할아버지의 육아일기는 벌써 오래전에 쓰여진 이문건의 양아록{養兒錄)을 통해 볼 수 있다. 

 

묵재 이문건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명망이 높았다. 1551년(명종 6)부터 1566년(명종 21)까지 16년간 손자를 양육한 경험을 기록한 일종의 육아일기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이자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쓴 유일한 육아일기로서, 2015년 4월 2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책 필사본이다.

 

 

그는 왜 육아일기를 썼을까? 

이문건은 51세 되던 해인 1545년(명종 즉위년)에 큰형 홍건(弘楗)의 아들 휘(煇)가 을사사화로 화를 입자 그 연좌죄로 경상북도 성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23년간 귀양살이를 하다가 삶을 마쳤다. 그는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으나 다들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하나 남은 아들 온(熅)도 어려서 앓은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온이 장가를 들어 내리 딸만 낳다가 1551년 아들 수봉(守封)을 낳았다. 이문건은 58세에 대를 이을 손자를 얻고 매우 기뻐하였으며, 손자가 가통을 잇는 군자다운 인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서 그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여 책으로 남겼다.

 

 

내용과 형식은 어떠 했을까? 

수봉의 출생 후 16세가 되던 1566년까지, 성장 발달의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기 형식의 시로 기록하였다. 시는 모두 37제(題) 41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밖에 산문 4편과 가족과 관련한 기록이 함께 실려 있다. 시는 일부 편폭이 짧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목 아래에 지은 날짜와 짓게 된 배경 또는 이유를 산문으로 설명하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고시(古詩) 형식을 취한 시가 많은데, 구수(句數)와 압운(押韻)의 제약을 받지 않고 육아 과정의 구체적 상황과 체험, 감정 등을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학어 學語>, <습좌 習坐> 등 성장 과정을 묘사한 시, <행역탄 行疫嘆>, <아리탄 兒痢嘆> 등 질병 또는 사고와 관련한 시, <달아탄 撻兒嘆>, <회자음 誨字吟> 등 훈육 및 학습과 관련한 시 등의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손자가 생후 6개월에 혼자 앉을 수 있게 된 뒤 스스로 일어나고 말문이 트여 할아버지가 글 읽는 모습을 흉내 내는 등의 성장 과정이 세말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천연두나 이질 등의 큰 병에서부터 다친 손톱이 다시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손자의 안위를 염려하는 절절함이 짙게 배어 있다. 훈육과 학습을 통하여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킬 훌륭한 사대부로 성장하기를 바랐으나, 손자가 성장하면서 공부를 게을리하며 조부의 말을 듣지 않고 언쟁을 벌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노옹조노탄 老翁躁怒嘆>을 끝으로 더 이상 기록하지 않았다.

 

 

교육적 의미는 무엇인가? 

조선시대에는 육아는 여성이 전적으로 담당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그런 조선시대에 양반 가문의 명망 있는 사대부가 기록한 육아일기라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자료이다. 양아록은 조선시대 '인간형성'의 기본을 가정에서 담당하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자녀가 5세가 되면 교육을 위해 직접 책을 만들거나 일반 동몽교재를 활용해서 가르쳤다. 조선시대 가정교육은 연령별 발달시기에 따른 교육의 특징이 있다. 현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시기를 발달단계에 따라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로 나누고 있는데, 양아록에서의 격대교육은 발달에 따른 같은 내용과 방법이라도 단계적으로 심화되고 차별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아기에는 적절한 환경조성과 양육자의 일관성있는 양육태도에 초점을 맞추었고, 유아기에는 본격적으로 침식을 같이 하며 강요보다는 자유롭고 너그러운 태도로 손자를 교육했다. 아동기에는 사대부로서의 자질 함양을 위해 심리적 절제와 절도를 강조하면서, 할아버지가 교육에 적극성을 띠게 된다. 이시기에 할아버지의 '고식적인 사랑'이 수봉의 양육과 교육에 문제로 표면화되고, 이문건의 성찰적 사고에 의한 교육행위의 교정으로 이어졌다. 청소년기는 조손간에 대립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렇게 양육의 한계상황에 다다르자, 이문건은 배움의 주체는 손자임을 수용하면서 관조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양아록 내용 중에는 손자가 태어나자 태(胎)를 안치한 일과 손자가 천연두에 걸리자 마마배송굿을 벌인 일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거의 전해지지 않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가정교육과 육아관·아동관은 물론 당시의 생활풍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양아록 격대교육의 특징은 무엇인가? 

교육내용적 측면 : 보양과 가문의식에 집중하면서 일상규범의 체득을 통한 근본교육 및 인성교육에 힘썼다는 점이다. 가문의 내력으로 인해 모든 내용에 심신의 수양이 강조되었다. 

교육방법적 측면 : 영유아기에는 자유롭게, 아동기에는 구체적인 계획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청소년기에는 손자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며 '내려놓음'으로 전환하였다. 격대교육의 의미는 육아 및 교육의 지향점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손자의 자질에 대한 이해, 양육자로서 객관적 관점을 견지하는 태도로 귀결된다. 

 

 

최근에도 할아버지들의 육아일기 책이 많이 발간되고 있다.

[초보할배의 8년 육아일기](2018)  [할아버지가 쓴 민준이 육아일기] (2021) , 먼 훗날 손자에게 들려줄 할아버지의 육아일기(2015),  [태원이는 오늘도 할아버지 배 위에서 잠이 든다](2021), [할아버지는 5남매의 시녀](2019) 

 

자손들을 키워내는 것은 숭고한 작업이다. 아이들의 인성발달과 성장을 위한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다시 새겨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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