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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녀

바짝이 2024. 2. 1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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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을 캐는 여자를 잠녀라고 하는데, 2월부터 5월 이전까지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채취한다.... 이들은 전복을 잡아 관가의 부역에 응하고 그 나머지를 팔아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했다. 그러므로 잠녀 생활은 고생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사치스러운 관리들이 욕심을 내어 교묘하게 갖은 명목을 만들어서 징수하니 1년 내내 조업을 해도 그 부역에 응하기가 어려웠다. 

-이건, [제주풍토기]-

 

고단한 바다의 노동자, 잠녀

 

제주도 문화의 중요한 키워드는 '해녀'다. 오늘날 산소공급 보조장치 없이 바닷속을 들어가 해조류와 패류를 채집하는 여성을 해녀(海女)라고 한다.  특히 2016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직업을 넘어 문화유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최근 해녀도 고령화되고, 해녀를 하고자 하는 이가 적어서 염려된다는 기사가 있었다. 

 

[숙종실록]에는 조선시대 해녀란 어촌에 살면서 어업에 종하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해녀를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불렀을까? 잠녀(潛女)다. 

 

바닷속에 들어가서 수영과 잠수를 하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포작(鮑作)이라 했다.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포작 종사 남성은 적었고 여성이 많았다고 되어 있어 원래 잠업에 종사하는 남성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때, 배를 소유하고 고기잡이에 직접 종사하는 격군(格軍)의 아내를 잠녀라 하고, 격군은 아내에 비해 두배 정도 되는 포작을 관아에 받쳤다고 한다.[숙종실록28] 

 

1680년 [남사일록] 기록에는 제주에 남자의 무덤이 매우 적으며, 여성의 무덤은 남성에 비해 3배 정도 많다는 증언이 있다. 요새는 딸아들 구별없다하고, 이전에는 딸보다 아들을 낳으면 좋아했던 때도 있었지만, 제주에서는 딸을 낳으면 부모에게 효도할 아이를 낳았다 하고, 아들을 낳으면 고래와 자라의 먹이라고 한다는 내용도 보인다. 남녀가 모두 바닷일을 했지만, 관아의 무리한 요구에 못이긴 격군과 잠녀들이 도망갔다는 기록을 보면, 당초 남녀 모두 잠업종사자였으나 남성들이 죽거나 도망하면서 남아있는 여성들이 이 일을 모두 떠맡은 듯 하다. 요즈음도 제주여성들은 생활력이 강하다고 이야기 하는 역사의 이면에는 이런 시대적인 아픔이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포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가 점점 감소했고, 1695년까지 전복잡이 잠녀는 9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미역을 캐는 잠녀는 약 800명이 있었다고 한다. 힘들어 도망가거나 나이가 들어 전복잡이 잠녀의 수가 점점 감소하자 관리들이 조정에 진상할 상품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 미역 잠녀들에게 전복 채취 기술을 익히게 해서 한두 개씩 할당하는 식으로 전복잡이 잠녀의 수를 유지했다.(이익태,[지영록])

제주해녀

 

 

 

10살정도가 되면 잠수 기술을 익히는데, 그때부터 바닷속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기술이 족쇄가 되어 삶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지금 해녀들은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마을 어장은 공유 자산으로 적지 않은 소득을 안겨주고 있지만, 그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조선잡사) 

 

제주해녀의 무형유산의 의미를 살펴보자. 제주도민이라면 거의 대부분 가족 중에 해녀가 있기 마련이므로 해녀 문화는 제주도민의 정체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작은 부표하나에 의지하여 거친 바다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해녀의 이미지는 제주도민의 정신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상징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해녀를 제주도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지정하였고, '해녀노래'는 많은 제주도민들이 가장 즐기는 노래가 되었다. 해녀와 공동체가 가진 연대와 조화의 정신을 증명한다. 또한 환경 친화적인 채취활동에 해당하므로 물질작업은 지속가능성을 강화한다. 장비없이 개인 능력의 한계를 갖고 물속에서 하는 일이므로 채취할 수 있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제해야 가능한 일이다. 제주 해녀의 문화는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일구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제주해녀들은 바다의 여신인 용왕할머니에게 제사(잠수굿)를 지내 바다에서 안전과 풍어를 기원한다. 잠수굿을 지낼 때는 해녀들이 '서우젯소리'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물질을 할 바다로 나갈 때 불렀던 '해녀노래' 역시 제주 해녀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물질 실력을 기준으로 제주 해녀 공동체는 상군, 중군, 하군의 세집단으로 나뉜다. 상군해녀는 오랜 기간 물질을 하여 기량이 뛰어나며, 암초와 해산물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어 흔히 해녀회를 이끈다. 제주 해녀들은 상군 해녀들로부터 물질에 필요한 지식뿐만 아니라 해녀 무노하에 대한 지식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배운다. 

 

마을 어촌계가 마을 주변 어장에 대한 입어권(入漁權)을 독접하기 때문에 물질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어촌계에 가입하고 해녀회의 회원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촌계와 해녀회는 제주 해녀 문화를 실천하고 전승하는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생존권을 수탈하는 일제에 맞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해녀의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 정신은 오래기억해야 한다.

 

제주해녀박물관

 

제주에는 제주해녀박물관이 있다. 

2003년 12월부터 조성사업을 시작해서 2006년 6월9일에 개관하였다. 지하1층, 지상3층의 연면적 4,000제곱미터에 3개의 전시실과 영상실, 전망대, 어린이 체험관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해녀의 삶을 주제로 해녀의 집, 어촌마을, 무속신앙, 세시풍속, 물질, 해녀공동체 등을 알 수 있고, 어촌과 어업문화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www.jeju.go.kr/haenyeo

 

현대는 많은 기술의 변화로 모든 것이 자동화, 양식화, 대량생산화 되는 시대다. 그러나 해녀의 무형유산 의미를 살펴볼 때, 많은 생각하게 한다. 조금은 느려도, 자연과 더불어 살며, 우리가 지켜왔던 소중한 공동체 문화와 지역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더욱 가치있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어렵게 이어진 잠녀의 문화가 앞으로도 제주문화의 대표로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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