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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객이 뭔가요?

바짝이 2024. 2. 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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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 세 판이 진행되면서 승패와 유불리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럴때면 구경꾼 모두 눈을 부릅뜨고 발을 구르며 그 형세를 돕고자 훈수를 두었다. 국수는 끝내 동요하지 않은 채 불리해도 막지 않고 유리해도 기뻐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법도에 따라 바둑을 두었다.                                                                                                                                                                -안중관, [회와집]

 

한중일 세나라는 바둑을 즐겼다.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바둑돌을 미리 깔아 놓고 공방하는 순장바둑을 주로 두었다. 김창업은 [노가재연행록]에서 중국인과 바둑을 두었던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우리식과 같지만 대국을 시작하며 배자(排子, 돌을 미리까는 것)를 하지 않는 점은 달랐다." 

 

삼국시대부터 사랑받은 바둑은 조선후기에 이르면 온 가족이 즐기는 놀이로 자리매김되었다. [소현성록], [유씨삼대록], [조씨삼대록] [명행정의록] 등 우리 고전 소설은 가족이 모여 대국하는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들 소설은 임금과 신하, 남녀 성 대결도 있어서 조선 후기 바둑 열풍을 짐작케 한다. 마치 오늘날 AI 알파고와 이세돌씨와의 대국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바둑은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생업으로 삼는 이들도 있었다. 영조 때 문인 유본학은 [문암유고]에 김석신에게 보내는 글을 남겼는데, 김석신은 국수(國手)로 손꼽혔으며, 내기 바둑을 두어 딴 돈으로 생계를 삼았다. 그는 바둑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프로 기사(棋士)였던 셈이다. 바둑기사가 후원자를 두었는데, 후원자가 있는 이는 기객(棊客,바둑을 두는 식객)이라 불렀다. 기객은 부호나 세력가에게 후원을 받으며 오직 바둑 기량을 갈고 닦았다. 

 

유명한 기객으로 김종귀(김종기), 양익빈, 변흥평, 정운창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바둑기사다. 분명 이세돌씨정도의 명성이 자자했으리라 상상해본다. 바둑기사 중에 최고봉에 오른 사람을 국수 또는 국기(國棋)라고 불렀다. 이들은 조선을 대표하는 큰 영예를 누렸다. 

 

김종귀와 정운창은 여러 문인들의 글에 종종 등장하는데, 두 사람은 그 시대를 풍미했던 맞수였기 때문이다. 김종귀가 한발 먼저 국수자리에 올랐고, 정운창은 김종귀를 누르고 새롭게 국수가 되었다. 

 

이서구의 [기객소전]에 따르면 정운창은 사촌 형에게 바둑을 배웠는데, 바둑에 몰두해서 6년동안 문밖을 나가지 않았고, 바둑돌을 손에 쥐면 자고 먹는 것 조차 잊었다고 하니, 오늘날 게임에 몰두해서 프로게이머가 되는 형상과 다르지 않는 듯 하다. 

 

신예 정운창과 국수 김종귀의 대국은 평양에서 이루어졌는데, 김종귀의 후원자가 당시 평양 감사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운창은 긴 수련 끝에 단번에 국수 김종귀를 이겼다. 이로써 정운창은 평양 감사의 기객이 되었고, 당대 여러 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사가 되었다. 평양감사는 정운창에게 백금(은화) 스무냥을 곧바로 꺼내 주었는데, 당시 서울에서 초가집 한 채를 살만한 금액이었다고 한다. 

 

실력 좋은 기사는 바둑대회에 초빙되었고, 대회주최자는 큰 상금을 걸었다. 요즈음 프로게임대회에 큰 상금이 걸리는 것과도 유사하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지만 바둑 기사는 서로를 예우했고, 선배를 몰아세우지 않는 대국을 미덕으로 삼았다. 정승이 개최한 바둑대회에서 김종귀와정운창이 다시 마주했을 때, 두판을 연거푸 진 김종귀가 정운창에게 눈짓을 주었다. 마지막 세판째 정운창은 일부러 실수를 거듭했다. 이미 승패는 정해졌으니, 선배 김종귀의 체면을 세워 준 것이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데, 오늘날 이런 상황이라면, 분명 문제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무튼 기객은 '프로바둑기사'였다.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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