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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체

바짝이 2024. 2. 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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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체가 무엇일까?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많았던 거 같다. 요즈음은 화장하는 남자가 낯설어 보이지 않고, 미용실도 남녀 구분없이 다니고,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멋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패션업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 낸다. 개인도 다양한 창업시장에 뛰어들면서 트렌드를 반영한 화려하고 아름다움제픔을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것은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조선시대도 다르지 않았다. 남성돌도 수정을 잇댄 갓끈과 옥으로 만든 관자, 귀걸이 꾸몄다. 사극에 등장하는 패션들이 남다르게 보일정도로 멋지게 차림새를 갖추는데에 관심을 두었던 게다. 여자는 풍성한 머리모양을 만든 가체(加髰,가발)와 현란한 비녀, 노리개로 치장했다. 

 

가체는 오늘날 '꼭 갖고 싶은 아이템' 이었다.

다래, 다레 라고도 하며, 표준어는 '다리'이다.

한자로 월자(月子)라고도 한다.

가체를 만드는 사람을 '가체장' 이라고 했다.

 

김홍도의 미인도(서을대학교 박물관소장) 화려한 가체를 한 여인이 경대를 보며 머리를 만지고 있다.

 

 

조선조 말엽 아정 이덕무의 [청정관전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바다.

 

가장이 금하지 못하니 부녀자들은 가체를 더 사치스럽게 하고 더 크게 만들지 못할까 걱정한다. 근래 어떤 집의 열세살 난 며느리가 가체를 높고 부겁게 만들었다.
시아버지가 방 안에 들어오자 며느리가 갑자기 일어서다가
가체에 눌려 목뼈가 부러졌다.


선조때는 귀걸이를, 정조 때는 가체를 금지했다. 영조 때도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대용하게 하는 가체금지령을 내려 바로 잡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체는 검소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사치로 보았다. 정조는 가체 금지 법령을 반포하며 한문 법조문과 한글 법조문까지 작성했으니, 당시에 가체가 상하 귀천을 떠나 유행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상황을 틈타서 나타나는 사기꾼들도 등장했는데, 단속이 심해지자, 조정에서 파견한 사람이라며 가체에 벌금을 거둬가는 범죄가 나타나기도 했다 하니, 참으로 어느시대든 틈새를 노린 시기꾼은 있나보다. 순조때에 이르러 금지가 사라졌다.

 

신윤복의 여속도첩/연당의 여인/ 저작권 :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가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아름다움을 꾸미기 위해 오래전부터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평어람]신라조에는 신라 부인에는 미발(美髮)이 많고 길이가 길다고 하였고, [당서] 신라조에도 아름다운 두발(頭髮)을 머리에 두르고 주채(珠綵)로 장식하였다고 하였다. 신라의 다리는 명물로 외국에 수출도 하였다고 한다. [당서] 신라조에는 남자가 머리를 깍아 팔았다고 한것으로 미루어 가난한 자가 머리를 깎아 다리로 판 것으로 가체의 풍숩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래 때도 있었고, 조선에서는 부녀자의 머리장식으로 절대적 조건이었다. 

 

인조모가 발명되기 전에는 가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하여 머리카락 하나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시절에, 가체를 만들려면 어찌해야 했을까? 

 

가체에 쓰인 머리카락은 죄수나 승려의 것이었다. 상투를 튼 남성의 머리카락도 썼다. 조선 남성은 상투를 맵시 있게 틀려고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깍았는데, 이를 '베코(혹은 백호)친다'고 했다 한다. 남성은 베코를 쳐 맵시를 더했고, 그렇게 얻은 머리카락은 가체장에 의해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가체로 탈바꿈되었다. 이덕무의 [사소절]에는 집안이 어려우면 여성이 다리를 팔아서라도 가계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실용적인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수집된 머리카락의 대부분은 남성의 것이었고, 모질이 각기 달라서 가체장은 여러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머리카락을 균일하게 다듬었다고 한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식은 유명한데, 영조나이 66세, 정순왕후15세의 혼례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에는 가체장은 당주홍, 홍합사, 황밀, 송진, 주사, 마사, 홍향사, 소금, 참기름을 이용해서 가체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각기 다른 머리카락의 질과 색상을 고르게 만들어 염색을 했는데, 짙한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빗으로 가지런히 빗어 머리 타래를 만들었데. 짧은 머리카락은 촛농을 써서 길게 붙였고, 수선한 머리카락 다발을 곱게 빗어 머리타래를 만들면 기초 작업이 끝난다. 

 

가체는 궁중 대례 때 쓰는 대수(大首)와 민가의 혼례 때 쓰는 거두미(巨頭味)는 모양이 달랐다. 부분가발처럼 쓰인 조짐머리, 얹은머리, 쪽머리, 새앙머리 등이다. 

 

가체장은 헤어디자이너 였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가체장의 예시

 

 

가체는 어디서 팔았을까? 

 

가체는 체괄전(髰髺廛)에서 팔았다. 체괄전은 각종 가체를 판매하던 가체전문매장이다. 직접 들고 다니며 방문판매도 했다. 중매장이나 수모(혼례 때 신부의 단장을 돕는 사람)가 그 일을 했다. 혼례 때 신부의 머리단장을 해주는 일을 수모가 했었다. 크고 무거워지는 가체는 가격이 크게 치솟았다. 이덕무의 글에는 당시 장신구를 포함한 가체 가격이 7-8만 전에 달한다고 했으니, 700냥에 달하는 금액으로 당시 열한 칸 반 초가집이 서울에서 110냥 저도라 했으니, 700냥 의 가체는 초가집 몇채를 살 수 있는 정도다. 가체를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빌려 쓰기도 했다. 

 

요즈음 헤어디자이너는 예전과 못지 않게 주목되는 직업이다. 특히 체인점까지 내는 대규모의 헤어샵들은 헤어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일이 되었다. 퀄리티 높고 서비스 좋은 헤어샵을 찾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고, 그 경쟁도 대단하다. 어느누구도 헤어를 자유롭게 스스로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곳이 바로 헤어샵이고 헤어디자이너들의 손길로 새롭게 멋스럽게 관리되기를 기대한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오늘도 끝없이 진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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