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아버지를 닮아 술자리를 즐겼고, 그 때문에 정사를 그르쳤다는 말이 있다. 물론 연산군도 나름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즐긴적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일이 있었을까? 1503년(연산군9년) 11월 31일 창경궁 내전에서 연산군과 대신들이 군신의 예를 잊어버리고 광란의 술자리를 벌였다. 연산군은 이날 북을 치며 노래하고, 더러는 손으로 대신들의 사모를 벗겨 머리털을 움켜쥐고 희롱하며 욕보이기도 했다. 영의정 성준(1436~1504)과 좌의정 이극균(1437~1504)에게 어의(御衣)까지 하사하여 직접 입혔고, 참의 한형윤(1470~1532)에게는 신발까지 벗어주면서 “너를 이조참판으로 삼는다”고 약속했다. 또 김감(1466~1509)에게도 “너에게 지성균관사(성균관의 정2품)를 시켜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