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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생활사

상아탑? 우골탑!!

바짝이 2024. 7. 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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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학은 어떤 모습인가?

오늘의 대학을 생각하는데에 전제되어야 할 과거 대학 시절 이야기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종종 상아탑이라는 말도 들어봤고, 우골탑이라는 말도 들어보았지요. 이러한 말들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현대생활문화사를 통해서 알아보기로 합니다. 

 

출처 : 캐나다한국일보

 


 

대학을 흔히 '상아탑'이라고 부른다. 상아탑이라는 말은 19세기 중엽(1830년) 프랑스의 문예평론가 생트뵈브가 예술지상주의 시인이었던 알프레드 드비니의 은거생활을 가리켜 '그는 대낮도 되기 전에 상아탑 속으로 들어갔다' 라고 표현한 데서 비롯되었다. 

 

코끼리들은 죽을 때가 되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생을 마감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그곳에 코끼리의 상아만 남아 높은 탑을 이룬다고 한다. 즉 상아탑은 사회와 단절된 채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지상주의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후 그 의미가 대학으로 확장되어, 상아탑은 대학이 사회와 단절되어 오직 학문 연구와 진리 탐구에만 몰두하는 기관임을 상징하는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상아탑 말고 '우골탑' 이라는 말도 있다. 과거 오랫동안 한국에서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고 불렀다. 한국 대학은 코끼리의 상아가 아니라 소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말은 1969년 1월에 생겼다. 당시 정원 초과, 입시부정, 공금유용 등의 문제로 대학 관련 잡음이 끊이지 않자, 국회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문교부와 3개 사립대학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였다. 국회의원들은 대학총장들을 불러 각 대학에 제기된 의혹들을 추궁하고, 이들 대학을 제대로 감독관리하지 못한 정부 당국을 질타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국회의원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발언을 했다.

 

사사(私大)의 팽창은 농민의 소 판 돈으로 충당되었소.
삐죽삐죽한 대학 정문이나 건물들은 농우(農牛)의 뿔로 세워진 '우골탑'이 아니고 뭐요? 

 

 

'우골탑'이라는 속물스런 단어는 속세에 물들지 않은 고고한 진리의 전당을 의미하는 '상아탑'과 대비되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곧 유행어가 되었다. 이때부터 '우골탑'은 시기를 소급해 1960년대 이래 국민들의 교육열을 이용해 부정하게 재산을 불린 한국의 대학을 풍자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 대학이 우골탑으로 전락한 데에는 학교의 운영을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한명이라도 학생을 더 뽑으려 한 대학의 탐욕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논을 팔고 밭을 팔고 소를 팔아서라도 기필코 자식을 교육시켜 대학에 보내려 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바탕에는 결국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입신출세'에 대한 욕망이 깔려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에게 대학 진학은 개개인의 입신출세를 위한 가장 중요한 발판 혹은 통로였던 것이다. 

 

-한국현대생활문화사-


출처 : 대학입학정보박람회

 

 

살림살이가 어렵지만 자식 공부시킨다고 소팔고 논팔고 대학을 보냈던 부모세대들에게 '우골탑'이라는 말은 얼마나 가슴 아픈말이었을까요?

 

현재 꽃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소멸되고 있다는 현실에서 보면, 우리 대학의 역사는 교육열로 얼룩진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아픔을 남긴 것이 분명합니다. 비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던 부모, 나아가 형제 중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자신의 학업은 포기하고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여형제들의 뒷바라지, 그 모든 것이 시대적인 아픔으로 남아있으니까요.

 

대학은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고, 대학교육이 마치 의무교육처럼 여겨지는 오늘날 의식과 생활환경은 시대적 아픔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낯설기만 하겠지요.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생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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